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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와 순교해석학 그리고 순교정신 (7)

3. 순교자 만들기
 
이상규 교수(고신대, 교회사)는 순교나 순교개념이 시대적 상황에 따라 다르게 표현될 수 있다고 하면서, 사회적 부조리와 대항하여 싸우다가 희생된 사람, 정치범, 인민해방운동자 등을 순교자로 볼 수 있다고 한다. 오늘의 사회가 과거와 달라서 다양한 형태의 희생자, 순교자를 낼 수 있는 상황이 되었고, 순교개념은 오늘의 상황에서 시대정신에 따라 새롭게 정의될 수 있다는 점을 주장의 근거로 삼는다.

달라진 상황, 오늘의 시대정신, 새로운 신앙 환경이 순교와 순교자 판단의 기준인가? 20세기 후반에 처음 등장한 새 순교 패러다임은 충분히 기독교적인가? 도대체 순교는 무엇이며, 누가 순교자인가? 순교자는 무엇을 위한 투쟁을 하다가 희생된 사람인가? 어거스틴은 “죽음의 이유가 순교자를 만든다”고 말했다. 죽음 자체가 순교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죽임을 당한 이유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순교정신이나 투쟁정신의 강도가 아니라 무엇을 위해 희생했는가 하는 것이 순교자 판별에 먼저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순교여부는 타인의 죽음에 대한 공동체의 선택적 기억과 의도적 판단에 의해 결정된다. 순교 해석자는 자기의 선이해를 가지고 죽음사건이라는 텍스트 안으로 들어가서(eisegesis) 해석하고 자기가 원하는 답을 찾아낸다(exegesis). 해석자의 신학 배경과 신앙 노선에 따라 관점이 달라진다. 해석학적 특성은 순교여부를 판단하는 집단의 의도와 신념 또는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받는다. ‘하나님의 선교’라는 이데올로기를 가진 신학자들은 인간화, 해방투쟁, 평화, 사회봉사 차원의 희생자를 추앙하는 순교자 만들기(martyr-making)에 열성을 보인다.

종교적 희생자라고 하여 모두 순교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20세기 초까지도, 순교자 칭호는 정통교회의 범주에 속한 기독인들의 희생적인 죽음에만 부여되었다. 정통신앙의 범주를 벗어난 이단자들은 같은 종류의 박해를 받고 죽음 당해도 순교자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죽음사건에 대한 기득권 집단의 의도된 해석이 순교여부를 결정한다. 죽음에 이르게 하는 물리적 힘과 순교자를 만드는 또 다른 힘이 결합하여 순교자를 만든다. 초기 교부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오리겐, 키프리안 등은 정통성을 가진 기성 교회에 속한 신자들의 순교와 그렇지 않은 몬타누스파의 종교적 죽음을 구분했다.

중세기 당시에 교황과 교계제도와 비진리에 항거하다가 희생된 교회개혁자들은 종교개혁운동 이후에 비로소 순교자로 인정되었다. 종교개혁자들은 로마가톨릭교회의 교계(敎階)가 아니라 계시성과 진리성의 관점에서 순교 여부를 판단했다. 이러한 순교 관점은 초기기독교공동체의 순교 해석과 일치한다. 순교는 기독인의 죽음에 대한 기억들의 취사 선택적 수집과 특정 집단에 의해 의도된 해석의 산물이지만, 종교개혁자들은 초기 기독교공동체의 순교의 원형을 순교에 대한 해석과 판단의 기준으로 삼았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과 복음수호와 계명 준수와 우상숭배 거부 등 진리성 때문에 희생된 죽음을 순교로 간주했다.

한국개신교 순교자 가운데 가장 많은 그룹은 공산주의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이다. 일제 때 발생한 기독인들의 죽음 사건들에 대한 연구는 부진한 반면에 한국전쟁 전후에 발생한 기독인의 죽음 사건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해석과 미화와 윤색과 과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반공주의 정신이 반공 순교자를 많이 만들고 싶은 욕망으로 표현된 것이다. 유독 공산주의 치하에서의 순교자가 많은 것은 죽음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 없이 지배 이데올로기에 편승하여 해석하고 신앙고백적인 사건 점검이나 규명 없이 이데올로기에 따라 사건을 과장하여 해석한 결과이다.

경기도 용인의 한국개신교회 순교자기념관에는 광복 직후 조선신학교(현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의 교장을 역임한 송창근 목사가 순교자로 ‘모셔져’ 있다. 인민군은 송창근을 끌고 가면서도 김재준 목사는 끌고 가지 않았다. 두 사람 다 미국에서 공부를 했다. 송창근은 일제말기에 경북지역에서 극심한 친일행각과 백귀난행을 저질렀다. 송창근은 끌려 다니다가 영양실조와 질병에 시달리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송창근이 순교자가 된 것은 기독인의 죽음 사건에 대한 바람직하지 않은 특정그룹의 선택된 기억, 의도된 해석, 이데올로기적인 판단, 과장, 윤색 과정을 따른 하나의 예이다. 기독인의 희생적 죽음이 특정 집단의 이해구도와 신학노선과 의도된 해석에 따라 ‘순교’로 포장되기도 하고 그 반대로 순교자가 되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순교자는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말은 일리 있는 주장이다.

 
 
최덕성
(전 고신대학교 역사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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