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회원등록비번분실즐겨찾기추가

통합검색  

   
신학 전체보기
에큐메니칼 운동과
다원주의
이민교회와 이민신학
성령 안에서 이미지로
설교하라
이단 사이비 연구
요한 웨슬리 생애와
신학
한국교회 성령운동,
무엇이 문제인가
팀사역 활성화
기독교인의 경제
성서 속의 현장을 가다
초대 교회로의 여행
평신도를 위한
쉬운 골로새서
평신도는 궁금하다
Q&A
미래교회연구

에큐메니칼 운동과 다원주의
Home > 신학 > 에큐메니칼 운동과
다원주의
   
영광스런 소망: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 22

시간과 삶
 
“아빠, 천국에도 테크놀로지가 있나요?”라고 8학년인 둘째가 물었다. 이유를 알만하다. 만약 천국이  인간의 삶의 실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면 매우 단조롭고 지겨운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끝없는 단순한 일의 반복, 컨베이어벨트의 삶만이 존재하는 곳은 아마도 지옥이 될 것이다. 영원한 삶을 변화가 없고 성장이 없는 그런 정지된 삶, 단지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으로만 인식하도록 하는 천국의 이미지는 매우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피조물의 세계를 반영하지 않는 것이라고 여기면 창세기에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무의미한 것이 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과 세계에는 처음부터 목표가 있었다. 창조는 시작부터 목표인 하나님의 나라를 지향하도록 되었다.
 
 창조세계는 인간과 모든 존재가 그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삶을 즐기며 자기 실현을 해 나가는 장소라는 뜻이다. 하나님을 알고 즐거워하며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예배와 섬김이 오직 진정으로 구현되는 곳은 바로 다름 아닌 세상이며 우리는 지극히 인간의 방식으로 하나님의 나라 안에 동참하고 그 나라가 성장하고 발전해나가는 일에 부르심을 받았다.

천국에도 피조물의 시간이 존재하는가 하는 질문은 여하간 다소 사변적이다. 성경은 시간에 대해 특정한 신학을 제공하지는 않으며 또 시간에 대한 이해가 기독교신앙의 일차적 교리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삶을 규정하는 피조물의 고유한 양식으로 시간을 이해한다면 시간은 피조물의 삶에서 도무지 떼어낼 수 없는 근본적인 양식이 된다. 어거스틴의 유명한 말대로 “하나님께서는 시간 속에서 세계를 만드신 것이 아니라 시간과 함께 세계를 만드셨다.” 우리의 존재양식은 시간이며 하나님의 존재양식은 영원이다. 하나님은 영원을 당신의 존재양식으로 갖고 있으며 피조물인 우리는 변화와 움직임이라는 시간을 고유한 양식으로 갖고 있다. 창조세계의 개개의 사물과 전체에 대해서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피조물의 양식인 시간에게도 해당된다. 빛과 어둠이 순서대로 나타나도록 하신 것을 인정하시며 아담과 하와에게 세상을 향해 전진하여 삶의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명령하신 것은 곧 시간과 역사를 향한 부르심이요, 삶의 참되고 복된 변화와 성장을 향한 거룩한 전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유한한 존재인 인간은 이 유한성 때문에 불안해하거나 창조에 뭔가 결핍되었다고 인식하지 않는다. 오히려 창조의 세계는 미래 지향적이며 종말적이고 하나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었다. 창조와 동시에 세상에는 변화와 활동이 시작되었고 시간은 하나님의 나라라는 미래를 향해서 나아가고 동시에 시간은 미래로부터 와서 현재를 거쳐 과거로 가는 방식도 함께 나타나게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도록 은혜를 허락하신 역사를 기념하고 또 자신들에게 주신 사명과 메시야적 미래를 위해 장차 올 일을 기대하며 오늘의 부르심에 헌신하도록 요구 받았다.

우리는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에서 바로 하나님나라를 향한 불순종과 하나님의 창조섭리를 거부하는 태도를 발견한다. 이들은 뱀의 소리를 듣고 선악과를 먹은 것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과 연결되기를 거부하는 독자적이고 자율적이며 인간 중심의 나라를 의도했고 하나님을 중심에서 밀어낸 격이었다. 바로 여기서 인간의 삶은 더 이상 하나님의 나라를 목표로 하지 않고 하나님 없는 자아실현으로 타락한 것이다. 아담과 하와는 매사에 하나님과 함께 교제함으로 그들의 삶 가운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그 나라를 향한 수가 놓아지도록 해야만 했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죄로 인해 인간의 삶에는 모순과 불안이 찾아오게 되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나무 뒤로 숨은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도망가는 인간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도록 된 인간이 자신의 창조주에게서 이질감을 발견하는 셈이다. 인간의 시간은 바로 여기서 불안과 초조함, 절박함을 경험하고 무언가 나은 초월적인 것을 바라보는데, 그러나 불행하게도 아담과 마찬가지로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이키지는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죽음에 가까워지고 하나님과 대면할 시간만이 남고, 유한성은 곧 사멸성이 되어 더 존재하고자 하는 생명이 더 이상 그럴 수 없음을 발견하고는 혼란과 절망에 빠진다. 초인적인 강력한 의지를 발휘하여 뭔가를 성취하고는 인생의 후반부는 짧은 여생을 오직 즐기는 데 사용하거나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허무함과 싸운다. 그러나 생명이란 알 수 없는 것, 그냥 죽어야 한다는 것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찾지 못하고 인생을 종결한다.  

죄는 시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타락시키는 것이다. 시간과 세계 그 자체에는 아무런 허물이 없다. 인간이 경험하는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을 통합하는 힘으로서의 하나님의 무시간적 영원을 대조한 어거스틴의 생각은 옳은 것이다. 인간의 시간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영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인간의 시간은 자율적이 된다. 그러나 불안한 인간의 시간을 통합하는 힘으로서 하나님의 영원과 대조하고 그래서 장차 하나님의 나라에는 시간이 없는 무시간적 영원이 요구된다는 사고는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어거스틴이 불안하게 인식하는 시간적 삶이란 실제로 죄의 영향 아래 있는 삶을 의미하며 죄는 시간 자체를 바꾼 것이 아니라 시간의 내용을 타락시킨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간 자체의 양식인 과거와 현재, 미래가 장차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소멸되고 오직 하나님의 영원의 양식인 무시간성이 우리의 영생을 규정한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죄인인 우리의 삶의 양식을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영원과 비교해 보는 것은 나쁘지 않으며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시편 90편 12절에는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라고 되어 있다. 즉 이 구절은 우리 시간의 유한성을 통해 하나님을 떠난 독립적 인생의 무상함과 죄성을 인식하도록 의도된 구절이다. 즉 우리 인간은 유한한 존재로 지음을 받았으나 결코 그 유한성이 사멸성(mortality)을 의미한 것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유한한 인간이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그 자신의 고유한 방식인 시간 속에서 하나님과 세계를 향유하는 것은 본래적으로 의도된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시간적인 양식을 갖게 될 것이다.

 
조용수 목사
한국침례신학대학원 MDiv
남침례신학교, 조직신학 박사,
현 조지아 크리스챤대 조직신학 교수







  0
3590
447 성경에는 왜 쉼표, 마침표가 없나? 2012-11-26
446 성경에 나타난 다양한 전도법 2012-04-26
445 몸의 정치: 말할 때와 침묵할 때 3 2012-04-19
444 몸의 정치:말할 때와 침묵할 때 2 2012-04-13
443 몸의 정치: 말할 때와 침묵할 때 (1) 2012-04-07
442 영광스런 소망: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 34 2012-03-22
441 영광스런 소망: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 33 2012-03-17
440 영광스런 소망: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 32 2012-03-09
439 영광스런 소망: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 31 2012-03-02
438 영광스런 소망: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 30 2012-02-24
437 영광스런 소망: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 29 2012-02-17
436 영광스런 소망: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 28 2012-02-09
435 순교자와 순교해석학 그리고 순교정신 (11) 2012-02-09
434 영광스런 소망: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 27 2012-02-02
433 순교자와 순교해석학 그리고 순교정신 (10) 2012-02-02
432 영광스런 소망: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 26 2012-01-26
431 순교자와 순교해석학 그리고 순교정신 (9) 2012-01-26
430 순교자와 순교해석학 그리고 순교정신 (8) 2012-01-19
429 영광스런 소망: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 25 2012-01-19
428 영광스런 소망: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 24 2012-01-14
427 순교자와 순교해석학 그리고 순교정신 (7) 2012-01-14
426 영광스런 소망: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 23 2012-01-06
425 순교자와 순교해석학 그리고 순교정신 (6) 2012-01-06
424 영광스런 소망: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 22 2011-12-22
423 순교자와 순교해석학 그리고 순교정신 (5) 2011-12-22
12345678910,,,18

<인터넷크리스찬타임스 후원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