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회원등록비번분실즐겨찾기추가

통합검색  

   

말씀 전체보기
Home > 말씀 > 말씀 전체보기
   
북치는 소년의 죽음 ②


“세상에서 만난 나의 최고의 친구 예수 그리스도도 유대인이십니다. 
내가 죽기전 선생님을 그분에게 소개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선생님 나에게 약속해 주시겠습니까? 
내가 지금 말씀 드리고저 하는 것은 절대로 잊지 않겠다고요.”  
전에는 특별한 호출이 있기 전에는 그렇게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날 밤 그 소년이 너무 보고 싶었다. 그날 밤 가망 없던 환자중 16명이 죽어 시체실로 나갔다고 병실 조수가 말해주었다. “찰리 쿨손은 어떠냐, 그도 죽었느냐?” “아닙니다. 그는 어린아기와 같이 잠을 자고 있습니다.”고 했다.
그의 침상으로 가니 9시경에 성도 두 사람이 와서 성경을 읽고 찬송을 불러주고 갔다고 한 간호원이 말해주었다. 그때 군목도 같이 와서 감격 어린 기도를 해주셨고, 기도후에 모두가 무릎을 꿇고 가장 은혜로운 찬송 “풍우 대작 할 때와” 란 찬송을 불렀는데, 그 소년도 같이 따라 불렀다고 한다.
나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찌 그와 같은 대 수술을 받고 찬송을 부를 수 있을까? 내가 소년의 팔 다리를 절단한지 5일째가 되는 날, 그가 나를 찾았다. 그날 나는 평생 처음으로 설교를 그에게 들었다. “선생님, 이제는 나의 때가 왔습니다. 한번 더 해뜨는 것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 합니다. 나는 떠날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죽기 전 선생님께 중심의 감사를 드리기 원합니다. 나에게 베풀어 주신 모든 친절에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유대인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믿지 않습니다. 선생님께서 여기 서서 내가 마지막 순간까지 내가 나의 주님을 의지하고 죽어가는 것을 봐 주시지 않겠습니까?”
나는 그곳에 머물러 있을려고 애를 써 보았으나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소년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의 사랑을 마음껏 느끼며 죽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예수를 미워하도록 어릴 때부터 배워왔다. 나는 급히 방을 뛰쳐 나오고 말았다. 나는 사무실로 돌아와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앉아 있었다. 악 23분이 지나 조수가 찾아왔다. 
“군의관님, 찰리 쿨손이 뵙자고 합니다.”“조금 전에 보고 왔습니다. 다시는 볼 수가 없습니다.”“그러나 군의관님, 그는 죽기 전에 반드시 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를 만나 보기로 결심을 했다. 그를 보면 영원한 말을 한 마디하고 죽도록 해야지. 그러나 그가 무슨 말을 해도 그가 믿는 예수에 관한 것이라면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방에 들어가니 그는 급격히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의 침대곁에 가서 앉았다. 그는 손을 잡아 달라고 했다.
“선생님은 유대인이기 때문에 나는 선생님을 사랑합니다. 세상에서 만난 나의 최고의 친구도 유대인이었습니다.”라고 했다. 그 친구의 이름이 무엇인가 물어보았다.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내가 죽기 전 선생님을 그분에게 소개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선생님, 나에게 약속해 주시겠습니까? 내가 지금 말씀 드리고저 하는 것은 절대로 잊지 않겠다고요.” 나는 약속했다.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5일전 선생님께서 나의 온 다리를 절단하고 계실때 나는 나의 주 예수님께 기도하고 있었읍니다. 무슨 기도를 한 줄 아십니까? 선생님의 영혼을 구원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 말은 내 마음 깊이 파고 들었다. 나는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내가 그에게 그와 같이 최고의 고통을 주고 있는 동안, 그는 자신도 잊고 아픔도 잊고 모든 것을 다 잊고 자기의 구주와 구원받지 못한 나의 영혼만을 생각하고 있을 수 있었을까? 내가 그에게 할 수 있는 말이란 “찰리야, 찰리는 곧 나을꺼야.” 그것뿐이었다. 그 말을 남기고 나는 그 방을 떠났다. 그로부터 20분이 지나, 그는 예수의 품에서 평안히 잠들었다. 전쟁 중 우리 병원에서 죽어간 사람은 수백을 헤아렸다.
그러나 무덤에까지 내가 따라간 것은 단 한 사람밖에 없다. 그 한 사람이란 북치는 소년 찰리 쿨손이였다. 나는 그가 묻히는 것을 보기 위해 3마일을 말을 타고 갔다. 그에게 새 정복을 입히고 장교의 관에 넣고 미국 국기를 덮었다.
그 사랑하는 소년의 유언은 나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금전문제를 논한다면 나는 그때 부자였다. 그러나 찰리가 그리스도에게 가졌던 마음과 동일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내가 가진 돈 전부를 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한 마음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얼마가지 않아 나는 소년의 짧은 설교를 잊고 말았다. 그러나 나는 깊은 죄책감에 사로 잡혔다. 그러나 사랑하는 소년의 기도가 이루어져 하나님께서 나의 영혼을 구원해 주시기까지 약 10년간 전통 유대교의 입장으로 그리스도를 대항하여 싸웠다. 내가 구원받고 약 18개월 후, 부룩클린시에서 어떤 기도집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그러한 집회에는 주로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사랑과 자비에 관해서 간증을 했다. 몇 사람이 알어나 간증을 한 후, 한 나이 많은 부인이 일어났다. “사랑하는 친구들, 내가 나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간증할 특권을 얻었는데, 이번이 마지막이 될지 모릅니다. 내가 천국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나의 아들을 만나리라 생각하니 큰 기쁨이 나를 휩쌉니다. 나의 아들은 나라를 위한 군인이였을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군인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디스버그 전쟁에서 부상을 입있는데, 유대인 의사가 그를 맡아 그의 팔과 다리를 절단했읍니다. 그러나 수술후 5일째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 부대의 군목이 편지해주셨고, 내 아들의 성경도 보내어 왔습니다. 그 편지 가운데 보니, 우리 아들은 죽어 가면서 유대인 의사를 불렀다고 했습니다. 그는 의사를 보고 ‘선생님, 내가 죽기전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5일전 선생님이 나의 팔 다리를 절단하고 있을때,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생님의 영혼을 구원해 주시도록 기도했습니다.’라고 했답니다.” 나는 부인의 간증을 듣고 도저히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자리에 일어서서 부인에게로 가서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나의 사랑하는 자매여, 하나님의 축복을 빕니다. 자매의 아들의 기도가 응답되었습니다. 내가 바로 그 유대인의 의사입니다. 그 아들이 나를 위해 기도했습니다.”<끝>


2017-12-14 16:54 크리스찬타임스
  0
3590

<인터넷크리스찬타임스 후원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