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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환 목사 | 하나님의 넘치는 축복 속에 걸어온 나의 삶 36

김형일 총무처장 사건
내가 내 글을 읽고 자리에 앉았을 때, 근자에 불란서 스트라스부르크에서 요한 칼빈(깔뱅)을 전공하고 돌아온 이수영 교수가 나를 가리키며 “학장님은 자유신학자입니다”라고 주를 달았다. 글쎄, 그 말이 옳은 것일까? 나의 입장은 언제나 진리를 향하여 연구를 계속하자는 것이다. 어느 한 시대의 신학이나 입장이 절대적일 수는 없는 것이기에, 계속해서 성경으로 돌아가 반성하고, 진리에 더 가까이 가도록 마음을 열어놓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었고, 그런 생각을 지금까지 가지고 있다. 

박조준 이사장의 퇴진
박조준 목사는 영락교회를 시무하는 동안 한경직 원로 목사의 그늘 밑에서 기를 펴지 못하고 살았다. 그는 한목사를 흉내내고, 그를 닮으려고 했고, 그것으로써 한목사가 받은 대우를 받으려고 했다. 그러나 사람은 자기 고유의 개성을 발휘하는 데 가치가 있고 보람이 있는 법이다. 한목사를 모방하는 박조준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박목사는 청년들에게 인기를 잃었다. 
그를 반대하는 운동이 거세졌다. 일구이언 하는 행동이 자주 보였다. 목사 사모가 돈을 좋아한다는 소문도 파다했다. 결국 박목사는 한국을 떠나기로 마음먹고 미국에 있는 사돈 정인영 목사와 연락하여 미국의 어떤 교회를 맡도록 준비를 한 다음, 장신대 임시이사회를 모아놓고 “나는 안식년을 얻어 일년간 미국에 가 있게 됩니다.”라고 발표하였다. 
그것은 사실과는 다른 거짓말이었다. 이민을 가면서 가장을 하고 한 말이었다. 그런 말을 한 후 얼마 뒤에 김포 공항을 빠져 나가려다 경찰에 붙들려, 미국행의 뜻을 이루지 못했던 것이다.

한경직 목사와의 면담
내가 학장이 되고 얼마 뒤에 남한산성 내에 계시는 한경직 목사님을 방문했다. 그가 한국교회 선교 100주년 기념사업회 회장직을 맡으시고 동분서주하실 때였다. 나는 그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함이었고, 동시에 그의 지도를 받기 위해서였다. 우선 인사와 치하를 드린 후에 내가 말문을 열었다. 
“과거 100년간 하나님의 은혜로 한국 교회가 이만큼 잘 자란 것은 다행한 일이고, 다 같이 경축할 일인데, 이제는 선교 제2세기로 접어들면서, 무언가 새로운 비젼 (vision)을 가지고 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목사님께서 미래를 향한 어떤 이상이나 비젼을 말씀해 주시면 우리 젊은이들이 따라가겠습니다.”
내 말을 들으신 한 목사님은 별로 생각을 하신 것이 없는 모양이었고 “글쎄” 라고만 하시고 별 말씀을 못하셨다. 그리고는 자기보다 아래 연령층의 사람들을 천거하시면서 그들을 만나보라는 것이었다. 그 자리를 물러나와 며칠 후에 시내 중앙에 있는 한식 요리집으로 교계 지도자격에 있는 몇 분을 모셨다. 임인식, 임택진, 박종열, 곽선희, 이영헌 등등이었다. 그들에게도 거의 같은 말을 했는데, 그들도 별로 생각이 없었다. 그것이 그 당시의 한국교회의 현주소였다. 생각없이 그저 그대로가 좋다는 것이었다. 

신학대학교 입학식, 나는 일년에 100명의 목사후보생을 배출하면 되겠다고 생각하였다.

장신대 학생 정원 감축과 교수 석좌제
나는 1959년부터, 한국장로교회의 문제는 목사가 너무 많다는 데 있다고 느꼈고, 계 학장께 10년간 신학교 문을 닫자고까지 한 사람이다. 그 후에 신학생들은 더 늘어나고, 입학 정원을 자꾸만 더 늘이자는 것이 교수들의 의견이었다. 고용수 교수가 미국 뉴욕의 콜럼비아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얻고 돌아 왔을 때, 우리 교수회는 한국교회의 목사 수급 계획을 세우자는 뜻에서 고박사에게 그 과제를 맡겼다. 그가 일년간 조사 연구한 결과가 나왔다. 일년에 신학생을 200명을 받으면 적합하다는 결론이었다. 그러나 나의 계산과는 달랐다. 그 당시 우리 장로교회 목사가 일년에 약 40명씩 은퇴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넉넉잡아 100명만 목사후보생을 배출하면 되겠다는 것이 나의 계산이었다. 
그 때 장신대 대학부 신과 입학정원이 234명이었는데, 그것이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그 절반만을 입학시켰다. 각 일간신문에 그 기사가 나고 전국적으로 화제가 됐었다. 그 후에 대학부 신학과 입학정원을 40명으로 줄였다. 
학생 주머니를 털어서 학교 운영을 하려니까, 불가불 학생들을 많이 받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수입원을 다른 데로 정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교수 석좌제를 추진하기로 하고 그 운동에 나섰다. 우선 영락교회와 새문안교회 등이 호응 하였다. 대구 지방으로 내려가서 거기의 지도자 목사들과 조찬을 나누며 내 의견을 말 했더니, 이상근 목사는 내 안을 일언지하에 반대하면서, 미국 침례교회가 발전하는 원인은 목사가 많아서라고 하시며, 우리는 많은 목사를 길러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계속>

박창환 목사
전 장신대총장


2018-05-03 17:31 크리스찬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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