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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환 목사 | 하나님의 넘치는 축복 속에 걸어온 나의 삶 26

I. 나의 신앙과 신학

대한성서공회 신약성경 새번역 작업
이렇게 해서 교수진도 갈라지고, 학생회도 두 쪽이 되었다. 계일승, 도양술, 김규당이 한 쪽이 되고, 권세열, 김윤국, 배제민이 반대편이 되었다. 학우회장 이병규는 계일승 학장 편이고, 고환규라는 학생이 나를 지지하는 학생들의 대표가 됐다. 마침내 경찰이 동원되는 사태에까지 이르는 격렬한 싸움으로 번졌다. 결국 고환규는 퇴학처분을 당하고, 나는 일시 교단(敎壇)에서 물러나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성서공회에서 월급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생활에 위협을 받지는 않았다. 배제민 목사는 그 사건에서 계일승 학장에게 회유(懷柔)되어 그 편에 서게 되었고, 마침내 미국 남장로교 장학금을 받아, 미국 루이빌 신학교로 유학을 갈 수 있었다. 계일승 박사가 그 장학위원이었던 것이다. 


2014년 장신대 개교 기념식에서 설교중인 박창환 목사

장로회신학교 학적부 사건
1959년 가을에 신학교가 갈라질 때 모든 집기와 문서가 총회신학교 측으로 실려 갔다. 학교로서 매우 중요한 학적부도 그 쪽으로 가버렸다. 따라서 성적표를 필요로 하는 우리 쪽 학생들과 목사들이 총회신학교에 가서 서류를 받아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 불편을 상당 기간 겪고 있었는데, 내가 해벌이 되어 신학교에서 강의를 다시 하고 있을 때 그 쪽의 학적부가 우리 쪽으로 올 수 있다는 해괴한 소문이 전해졌다. 연세대학교 총장 백낙준 박사의 비서였던 이준이라는 우리 학교 학생을 통해서 들려 온 소식이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 쪽으로 오는데 필요한 비용이 40만원이라는 것이었다. 그 문제를 가지고 계일승 학장과 박무식(朴武植) 사무장이 심사숙고한 끝에 그 작업을 하지 않기로 작정해 버렸다. 혹시나 형사문제가 생기면 어쩌나 하는 염려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일 년 후에 다시 학적부 문제가 대두되면서, 이번에는 20만 원만 있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 문제를 가지고 다시 학장과 사무장이 숙의했지만 결론은 전번과 같이 “No”이었다. 
 그런데 얼마 후에 나에게 김기인 집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바로 총회신학교 사무장 김기인 집사로부터 말이다. 서울 을지로 입구에 있는 반도호텔(지금은 롯데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만나자는 것이었다. 정한 장소와 시간에 그를 만났다. 김기인 집사는 나와 매우 가까운 관계에 있던 직원이었다. 남산에 신학교가 있을 때, 사무직원이 네 명 있었는데, 김창준 집사 밑에 고연옥, 김기인, 이하영 삼인의 보조원들이 있었다. 신학교 대지 구입문제에 연류된 김창준은 떨어져 나가고, 고연옥은 광나루로 우리를 따라 왔고, 김기인과 이하영은 총회신학교로 간 것이다. 김기인은 충청도 출신으로, 흑석동에 있는 나의 바로 앞집에서 살았고, 내가 명수대교회 강단을 맡고 있을 때, 그 교회 집사였고, 그가 폐결핵으로 고생을 하기에 내가 그의 병 치료를 위하여 도움을 준 일도 있고 해서, 나와는 불가분리의 관계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신학교 사무실에서 호남 출신인 고연옥 집사와의 관계가 너무도 나빠 사사건건 마찰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네가 이 쪽에 가면 나는 저 쪽으로 간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고연옥 집사가 잽싸게 광나루 쪽으로 붙었기 때문에, 김기인 집사는 합동 측 신학교으로 갔던 것이다. 그러니 김 집사의 마음은 광나루 쪽, 곧 나 박창환이 있는 곳을 동경하면서, 몸만 그 쪽에 가 있는 상황이었다. 
반도 호텔 라운지에서 김 집사를 만나 인사를 나누고는 내가 그를 위로하며 어떻게 지내는가 묻고, 어째서 거기서 고생을 하느냐고 했더니, 마지못해 있다고 하며 자기 형편을 늘어놓는 것이었다. 그 곳을 떠나고 싶은데 그 학교 직원들에게 빚을 진 것이 있어서, 그것을 청산해야만 나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용산구에 국회의원으로 출마했던 김원만이라는 사람의 선거 운동을 돕다가, 김원만이 낙선되는 바람에, 자기가 끌어댔던 돈이 몽땅 자기 빚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그 빚을 내가 갚아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 때에는 내가 월급을 두 곳에서 받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그 정도 말을 하고는 후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며칠 후에 종로 화신백화점 뒤에 있는 ‘거상’(巨象)이라는 다방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그와의 대화 중에, 꼭 필요한 금액을 말하라고 했더니, 17만원이라고 했다.<계속>


박창환 목사
전 장신대총장


2018-02-16 01:59 크리스찬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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