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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환 목사 | 하나님의 넘치는 축복 속에 걸어온 나의 삶 19

 I. 나의 신앙과 신학

서울로 복귀한 장로회신학교

Princeton을 떠나 Chicago를 거쳐서, San Francisco행 Santa Fe 열차 침대실에 몸을 싣고 우선 Los Angeles를 향하여 떠났다. 미국장로교선교부가 유학생들에게 융숭한 대접을 하며, 가급적 많은 구경을 하고, 경험을 가지고 귀국하도록 배려하는 것이었다. 미국 대륙을 기차로 남서쪽 방향으로 달려, 약 2일간 횡단한 후, New Mexico의 알바쿠키라는 역에서 내렸다. 그 근처에 있는 아메리칸 인디안 내지(內地)선교 현황을 시찰하기 위한 것이었다. 소위 나바호 족 인디안들을 위하여 북장로교가 선교단지를 만들고 그들을 교육하며 지도하는 시설을 시찰하는 것이었다. 인디안들이 무절제하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술을 팔지 못하게 되어 있었는데, 얼마 전에 그 법이 폐지됨으로, 그들이 술을 마구 마신다는 것이었다. 알바쿠키 역에서 내려 거리를 지나가는데, 많은 인디안들이 대낮에 술에 취하여 길가에 누워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공부하기 싫어하는 그들을 억지로 끌어다가 합숙을 시키며, 교육을 시키고 직업 훈련을 시키는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었다. 인디안들은 아세아에서 건너온 족속이어서, 한증(汗蒸)이라는 것이 있고, 땀으로 목욕을 하며 때를 벗긴다는 것이었다. 샤마니즘이 있어서 무당들의 활동도 성행한다는 것이었다. 

거기를 떠나 Los Angeles에 들러 김성락 박사의 안내를 받으며 LA. 구경도 하고, 김 목사님 교회(졔퍼손 장로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며 설교도 하고, 풀러신학교에 다니시는 이 종성 목사도 처음으로 만날 수 있었다. 미국 동부와는 매우 다른 건축구조(스페인식 건물)들을 보며 과연 넓고 다양한 나라라는 것을 느꼈다. 다시 열차로 San Francisco에 도착하여 구경을 하고 부산행 화물선에 몸을 싣고, 구제품과 구입한 서적을 싣고 태평양을 건너는 항해를 시작했다. 안식년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미국 선교사들도 동행했다. 14일이나 걸리는 긴 항해를 무사히 끝내고 부산항에 들어섰다. 부두에는 사랑하는 아내와 두 살난 아들 명진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 날 세관에서 짐을 찾아 열차에 옮겨 싣고 서울로 향하였다. 서울 중구 순화동 7-19에 있는 제주도 지사, 나의 동서, 길성운 댁에서 임시로 살기로 하고 그리로 짐을 옮겼고, 거기서 서울 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길 지사는 부인과 함께 제주시 관저에서 어린 자녀들과 같이 계시고, 서울에는 희범, 희성 두 아들과, 맏딸 희영이의 학교 공부를 위하여 할머니와 함께 유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아이들을 돌보는 책임을 지고 같이 있기로 했다. 그 순화동 집은 길성운 형님께서 중앙청 관재국에 계실 때 소위 적산 가옥을 불하받은 일본식 집이었다. 다다미 8쪽 방이 하나, 6쪽 방이 둘, 2 쪽 방이 하나, 넉넉한 부엌, 그리고 목욕실 등이 있는 꽤 큰 집이었다. 

장로회신학교는 1953년에 박형용 박사(사진)가 제2대 교장으로 취임하였다. 정부가 부산에서 서울로 환도하면서, 신학교도 서울로 복귀하기로 결정하고 선교부 도움으로 남산 신궁 별관 몇 개를 수리하였다. 과거의 것은 말고, 맞은편에 있는 부서진 큰 건물을 채풀실 겸 교실로 쓰려고 수리했고, 다른 작은 건물 둘을 수리하여, 도서관과 교실과 사무실로 쓰려고 수리했다. 운동장에는 예과를 위하여 임시 천막집을 지었다. 

대구에서 개교하면서 예과 제도를 두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내가 귀국해서 보니 이미 모든 학과가 그 수리된 서울 교사로 옮겨져 있었다. 계일승 박사가 교무과장이고 명신홍 목사가 학생과장이었다. 예배실로 사용되는 큰 집은 1학년 교실로 겸용되고 있었고, 강단 옆에 교장실이, 예배실 입구 양편에 교무과장실과 학생과장실이 있었다. 또 하나의 길다란 교실을 세 칸으로 나누어 본과 2년과 3년 교실로, 그리고 교문 가까이에 있는 첫 칸을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강당과 다른 건물 사이에 있는 작은 창고를 도서관으로, 때로는 교실로 사용하였다. 

내가 박형용 교장을 만나 귀국 인사를 드렸더니, 그의 걱정거리를 털어놓는 것이었다. 헬라어를 가르치는 배제민 강사에 대한 학생들의 불만이 크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교무과장인 계일승 박사에 대한 거센 불만이 있다는 것이었다. 2년 전에 내가 유학을 떠날 때 박 박사의 걱정은, 내가 떠난 다음에 성경 원어를 누가 가르칠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학생 중에 어학을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들을 골라서 임시로 가르치도록 하는 길 밖에 없지 않겠는가고 하면서, 히브리어를 졸업반에 있는 최의원(崔義元)에게, 헬라어를 본과 2학년에 있는 배제민(裵濟民)에게 맡기면 좋을 것 같다고 일러드렸던 것이다. 내가 귀국하여 보니 박 박사께서 나의 제안대로 그 두 사람에게 과목을 맡기신 것이었다. 그런데 최의원에 대해서는 불평이 없고 배제민에 대해서는 많은 불평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 번은 배제민의 헬라어 강의 시간에 칸막이 구멍을 통하여 그의 수업 광경을 엿보았다. 과연 학생들이 불평할만 하였다. 강사가 흑판 앞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교과서를 들여다 보며, 계속 무언가를 말하는데, 학생들은 다른 책을 보거나 정신을 다른 데 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강사가 흑판을 이용하여 설명하는 것은 없이 그냥 말로만 설명을 하고, 학생들과는 시선을 맞추지 않는 것이었다.

계일승 교무과장은 외국으로 유학가는 학생들의 영문 성적증명서와 추천서 등을 써주어야 하는 의무가 있는데, 그런 업무를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임무를 교장 박 박사가 대행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나더러 우선 그 업무를 맡으라는 것이었다. 

이런 문제의 해결책으로 먼저 배제민을 빨리 유학을 보내자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나더러 그를 유학 보낼 방법을 구해보라는 것이었다. 나에게는 그럴만한 힘이 없었다. 그런데 다음 해에 최의원은 유학의 길을 뚫어 미국으로 가버렸다. 배제민은 최의원을 매우 질시하여 그 둘 사이가 좋지 않았었다. 배제민의 말에 의하면 최의원이 배제민더러 헬라어 과목을 자기가 가르치겠다고 하면서 그 과목을 빼앗으려 했다는 것이다. 하여간 최의원이 먼저 유학을 가는 바람에 배제민은 속이 상했다. 자기는 가지 못하고, 또 갈 희망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나에게도 그 길을 열어달라고 조르기도 했었다. <계속>


박창환 목사
전 장신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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