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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환 목사 | 하나님의 넘치는 축복 속에 걸어온 나의 삶 15

▲인천상륙 작전중인 맥아더 장군


6.25 동란과 장로회신학교
장로회신학교 관계자도 세 사람이 서울에 남아 있다가 행방불명이 되었다. 인민군들에게 살해되었든가, 아니면 이북으로 끌려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무 김원일 집사와, 박형용 교장 사택을 지키고 있던 김용서라는 학생(정능교회 김 모 장로의 아들)과 박 박사의 친조카 한 사람이 희생됐다. 조선신학교 교장 송창근을 비롯하여 시내의 많은 목사들이 이북으로 끌려가 버렸다. 새문안 교회 목사 김영주, 해방교회 허은 목사, 남대문교회 목사 김예진, 서울교회 전인선 목사, 그리고 남궁혁 박사 등등이 희생됐다.

서울에서 살아남은 나
정부는 서울을 버리고 남쪽으로 남쪽으로 계속 이동하고 있었고, 적군의 진격 속도를 줄이기 위해서 한강철교들을 다 폭파하여 끊어 놓았다. 서울에 남이 있는 사람들은 극심한 불안 속에서 나날을 지내야 했다. 인민군이 남자들, 특히 청년들을 잡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몸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 대낮에는 그런대로 밖에 나가다닐 수 있지만, 밤이면 빨갱이로 변한 동회 직원들을 내 세워서, 집집마다 뒤져서 남자들을 잡아가는 것이었다. 나는 충무로 이석금 집사 댁에서 며칠을 버티다가, 약혼녀 현수삼의 부모님과 그녀의 언니 모자(母子=현수인과 아들 송승호)와 내 여동생 정연이와 함께 명륜동에 있는 2층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현수길 교수의 친구가 피난을 가면서 비어 놓은 집이었다. 현태룡 목사는 약혼 상태에 있는 수삼과 나를 불러놓고, 이 난(亂) 통에 생사를 같이 해야 할 터이니, 결혼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시며, 약식으로 결혼식을 올리자는 것이었다. 서울 시내 순화동에는 중앙청 관재처 국장으로 있던 길성운씨 가족이 역시 피난을 하지 못한 채 남아 있었다. 길성운은 현태룡 목사의 둘째 사위이고, 현수길 교수의 매형으로서, 일본 동경 유학시절부터 사귀다가 남매 관계를 맺은 처지였다. 
현 목사께서 수삼과 나의 결혼식을 위해서, 길성운 집에서 소고기 한 근을 얻어가지고 오셨다. 그 전란 속에서 많은 시민이 자기들의 생존을 위하여 가장을 하고 시장에서 장사도 하고, 자기들이 고이 간직하고 있던 가구들도 내다 팔고 하면서 지내던 시절이었다. 현 목사님은 우리가 임시로 있는 집 이층에 식구들을 다 모아놓고, 수삼과 나를 앉힌 다음, 결혼식을 주례하는 것이었다. 밖에는 인민군들이 왕래하고, 주변 사람들의 성분도 모르는 형편이기 때문에, 찬송도 부르지 못하고, 성경을 보신 다음 축복 기도를 하시는 것으로 결혼예식을 끝내셨다. 그리고는 길 선생 댁에서 가져온 소고기 국을 끓여서 나누어 먹는 것으로 이어졌다. 신랑 신부는 입던 옷을 그대로 입은 채였고, 결혼 반지도, 어떤 예물교환도 없는 가장 간단하고도 값싼 결혼식을 올린 셈이었다. 물론 신혼여행 같은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처지였고. 
밤이 되면 종종 동회 직원과 공산청년들이 몽둥이를 들고 대문에 와서 “이 집에 남자 있어요?”하고 묻곤 했다. 하나님의 보호로 나는 들키지 않고 지내었다. 여동생 정연이가 시장에 나가 장사도 하고, 아르바이트를 했다. 먹는 것은 형편이 없었다. 날마다 죽을 쑤어 먹어야 했고, 근근이 목숨을 이어가고 있었다. 어떤 날 정연이가 시장에 가서 다니는 중에 나보다 한 살 아래인 친삼촌 박경대가 인민군 장교 견장을 달고 지나가는 것을 만났다. 그리고는 그를 데리고 우리 숙소까지 왔기 때문에 오랜만에 삼촌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 부대로 돌아가야만 했다. 전쟁은 확대되어, 인민군이 호남을 석권하고, 대구 변두리까지 조여갔다. 그러나 미군을 비롯한 연합군의 반격이 이루어지면서, 인민군은 후퇴를 시작하였고,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 작전이 성공하면서 전쟁은 급속도로 역전되어갔다. 서울을 탈환하는 작전이 시작되고, 인민군은 철수 작전으로 접어들면서, 최후 발악을 하는 국면에 이르렀다. 마지막으로 집집을 뒤지면서 남자를 다 잡아가기로 한 것이다. 내가 있는 집에도 한 밤중에 10 여명의 무리가 몽둥이들 들고와 대문 앞에 서서 “이 집에 남자 있습니까?”하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올 것이 왔구나’하는 생각을 하면서, 즉 없다고 해도 열고 들어와 방방을 뒤질 것이 뻔하기 때문에, 내가 자진해서 2층에서 계단을 밟고 용감하게 마당으로 그들을 맞으러 나갔다. 문 밖에 서 있는 일당을 향하여 
“동무들 수고 하십니다.”하고 먼저 인사를 했다. 그랬더니 의아하다는 듯이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묻는 것이었다.
“나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묻지를 마시오. 나는 이 지역에 비밀 임무를 띠고 와 있는 사람인데, 이름도 아무 것도 말할 수 없소”하고 대답을 했다. <계속>


박창환 목사
전 장신대총장


2017-11-22 04:36 크리스찬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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