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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환 목사 | 하나님의 넘치는 축복 속에 걸어온 나의 삶 12

I . 나의 신앙과 신학

장로회신학교 설립과 갈등

1948년 6월 9일 역사적인 개교식을 거행했다. 고려신학교를 다니던 신앙동지회원, 본래 고려신학교 학생이었던 사람들, 그리고 일본, 중국, 또는 국내 다른 신학교에 다니던 장로교회 신학생들이 새 학교의 학생들이 됐다. 교수라고 해야 박형룡 박사 외에 권세열 선교사와 남대문교회 담임인 김치선 목사 정도였다. 박 박사가 조직신학뿐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과목도 가르치셨다. 설립한 지 한 달이 되는 7월 9일에 제1 회 졸업식을 가졌다. 제1회 졸업생이 25 명이었고, 이양배 여전도사가 홍일점이었다.
나도 그 25명 제1회 졸업생 중의 하나였다. 부산에서 올라오자 다른 학생들과 함께 교장 사택 일층에서 살았다. 해방 직후인지라 영어를 공부하려는 학생들이 많아서, 나는 방과 후에 그들을 모아서 초보 영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졸업식 날이 가까워오고, 졸업반 동지들은 다 일터를 이미 정하고, 희망 중에 졸업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데, 나를 부르는 곳은 없었다. 그래도 나는 겨울 방학 때 춘천에 가있는 동안 새벽마다 하나님께 나의 길을 인도하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인도하시기를 기도했고, 그 기도를 계속 하고 있었기 때문에 걱정은 하지 않고 있었다.
졸업식을 며칠 앞두고, 방과 후에 우연히 박 박사님과 나와 단 둘이서 청파동 사택을 향하여 남산을 내려가고 있는데, 박 박사님이 느닷없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셨다.
 “박군은 졸업 후에 어디 갈 데가 있는가?”
“없습니다” 라고 대답할 밖에.
박 박사님은 조금 뜸을 들이더니,
“우리 신학교에서 가르쳐보지 않을래?”하는 것이었다.
나는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제안이고 물음이었기 때문에, 한 참 어리벙벙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제가 뭐를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고 물었다.
“어학을 가르쳐보지 그래” 하고 대답하시는 것이었다.
그 때 내가 무슨 정신으로 그랬는지 몰라도, “그러지요”하고 대답을 했다. 그래서 1948년 9월 학기부터 모교의 어학 전임강사가 되었다. 히브리어, 헬라어,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호랑이 담배 먹던 시대라고나 할까, 그리고 무호동중이작호(無虎洞中狸作虎=호랑이 없는 고을에서 너구리가 호랑이 노릇을 한다)격이라고나 할까, 사람이 정 없으니까, 대용품 노릇을 하게 된 셈이다. 하여간 나는 하나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다. 그 때부터 시작하여 일생을 신학교 교수로서 하나님을 섬길 수 있었으니 말이다.
내가 장로회신학교에서 가르치기 시작한 지 몇 달이 지났을 때, 위에서 말한 대로 고려신학교의 한부선 선교사로부터 편지가 왔다. 내가 미국 휘튼대학에 입학이 됐고, 직장도 마련되었는데, 갈 것인가 말 것인가 회답을 달라는 편지였다. 그래서 박형용 박사께 그 편지를 보였더니, 가지 말라는 것이었다. 당장 교수가 없는 상태이니, 앞으로 기회가 되면 자기가 유학 알선을 해 주시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유학을 단념하였다. 마침 그 때에 내 동생 정연(貞姸)이가, 나, 오빠를 찾아 남하했는데 그를 버려두고 당장 떠날 수가 없는 형편이기도 했다. 어쨌든 하나님은 나의 앞길을 예비하고 계셨던 것이다. 박 박사님이 나를 어떻게 알고서 신학교 강사가 되라는 제안을 하셨는지 알 길이 없다. 아마도 고려신학교에 있을 때부터 교수들이 나를 거론했는지도 모른다. 한부선 선교사(사진)가 나를 휘튼 대학에 입학시키려고 한 것은 그 한 분의 결정으로 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장로회신학교를 신설하려는 신앙동지회 간부들은 박 박사와 함께 신설 학교의 교수진 구성을 논하면서, 나를 거론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그런데 내가 미국 디트로이트(Detroit)에서 막내 아들(박선진 목사)의 식구 근처에서 사는 동안(2001년 이래) 캘리포니아 주에 사시는 나의 동기 동창 조원곤 증경 총회장이 그의 딸네 집에 오실 때마나 몇 차례 만났다. 한 번은 그가 나를 자기 딸 집으로 초대하여 같이 저녁을 먹은 후에, 나더러 묻는 것이었다.
 “박목사가 어떻게 해서 장로회신학교에 취직됐는지 알아?”
“아니요. 전혀 모릅니다”하고 대답했더니, 그가 하는 말이
“내가 박형룡 박사께 당신을 소개했어” 하시는 것이었다.
 약간 수수께끼가 풀렸다. 조목사의 말도 사실일 터이니까. <계속>


박창환 목사
전 장신대총장


2017-11-02 05:29 크리스찬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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