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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환 목사 | 하나님의 넘치는 축복 속에 걸어온 나의 삶 11

I . 나의 신앙과 신학
장로회신학교 설립과 갈등

1949년 장신대 제2회 졸업식 사진, 왼쪽 앞줄에서 다섯번째가 박형룡 목사.


고려신학교의 노선과 갈등
나에게는 아무 말도 없이 일방적으로, 이미 결정이나 된 듯이 어떤 날 나의 잠옷을 사다 놓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신학생으로서 공부에만 전념하고, 전혀 눈을 돌리지 않았다. 그 모녀는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고, 내 마음을 사려고 노력했다. 내가 겨울방학을 마치고 부산으로 떠나는 날은 새벽 미명인데 그 모녀가 춘천역에 나보다 먼저 나가 기차표를 사가지고 차간에 자리까지 잡아놓고 나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나는 무정하게 그냥 떠나고 말았다. 그 후에도 약 일 년 이상 그녀는 나를 사모하며 행여나 하고 기다렸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고려신학교 개학이 되어 다시 강의가 시작되었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급우 이성권 전도사는 같은 동리에서 온 분이지만, 자기 또래의 전도사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나와는 별로 접촉이 없었는데, 하루는 그가 나의 잠자리에 같이 누어 잠을 자게 되었다. 새벽녘에 그가 숨을 몰아쉬며 이상한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잠꼬대를 하는 줄로 알았다. 그래서 내가 팔꿈치로 그의 옆구리를 몇 번 쳤더니, “응”하면서 포단에 쓸어져 눕는 것이었다. 나는 그가 다시 잠이 드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심장마비로 그가 숨을 거두는 순간이었다. 내가 몇 시간을 이미 죽은 이 전도사와 함께 한 자리에서 잤는지 모른다. 새벽 기도회를 알리는 요란한 종소리에 깨어보니, 그의 몸은 이미 식어 있었다. 그는 모르는 사이에 고향 사람을 찾아와 한 자리에서 자다가 숨을 거둔 것이다.
나는 그냥 공부만 하고 있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교회 보수적 유지들(이정로, 권연호, 이인식, 김선두, 김광수, 계일승, 이운형, 이재형, 전인선, 김현정 등)과 신앙동지회 주동자들은 암암리에 새 일을 꾸미고 있었다. 박형룡 박사를 모시고 서울로 가서 다른 신학교를 세우려는 공작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려신학교의 청빙으로 박 박사가 그 학교의 교장직을 맡았지만, 그는 “이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을 스스로도 하셨을 것이고, 전국 교회 지도자들과 신앙동지회원들의 집요한 권유에, 고려신학교를 떠나려는 결정을 하였다. 신학교가 한국 남단 부산에 있어 가지고는 전국 교회를 지도하거나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라도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이념적 갈등도 있었다. 하여간 박 박사는 고려신학교를 떠날 구실과 뚜렷한 명분이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가 내세운 명분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신학교가 과거처럼 여러 굴지 선교회의 후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즉 미국의 약한 교단만의 후원을 가지고는 되지 않으니, 종전처럼 미국 남북 장로교회도 후원교회로 받아들이자는 것이었다. 그것은 고려신학교를 지원하고 있는 미국 정통장로교회와 성경장로교회와 그들이 파송한 선교사들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었다. 그것은 미국 내의 장로교회가 역시 신학 사상적으로 갈라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음은 고려신학교와 고려파 교회가 다른 장로회 교단과 교회들을 정죄하고, 그들의 회개와 굴복을 요구하는 태도와 정책을 버리고, 오히려 전체 한국 장로교회 안으로 들어가서 그들을 회유하고 가르치고 회개시키도록 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을 한 것이다. 그것도 고려파의 지금까지의 특색과 주장을 묵살하는 안이기 때문에, 고려파 당국과 신학교는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박 박사는 “나는 떠납니다” 하고 떠날 수 있는 명분이 생겼다. 고려신학교 학생들은 떠나가는 박 박사를 발람 선지자와 같다고 비난을 했다. 일신의 이득에 눈이 어두워져서 정로를 벗어났다는 것이었다.
 
장로회신학교 설립과 갈등
장로회신학교 설립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우선 조선신학교의 신학 사상 노선이 한국장로교회의 전통적 노선과 다르다는 것을 염려하는 사람들이 구 평양신학교의 노선을 그대로 계승하는 신학교를 세워 그 전통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며, 따라서 조선신학교의 운동을 저지하자는 것이었다. 한국교회의 바른 신학교육을 서울에서 실시함으로써 전국교회에게 균등한 효과를 주자는 것이었다. 동시에 고려파의 편파성을 피하자는 것이기도 했다.
교사(校舍)는 서울 남산, 폐기된 조선신궁 부속건물 한 동, 즉 성도교회(황은균 목사 담임)가 임시로 교회당으로 사용하고 있는 건물을 사용하기로 하였고, 교장 사택으로는 용산구 청파동에 있는 적산가옥을 매입하였고, 그 일부를 학생의 기숙사로 사용하기로 했다. 도원동과 회현동에 남자 기숙사를 매입하여 남은 학생들을 수용하였다. 여학생들은 퇴계로에 있는 송죽학사에 수용하기로 했다. <계속>


박창환 목사
전 장신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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