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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환 목사 | 하나님의 넘치는 축복 속에 걸어온 나의 삶 8

I . 나의 신앙과 신학
장로교회 직영신학교(조선신학교)에서 생긴 일

▲서울 동자동에 있던 조선 신학교(1945-1957)


그들은 김 교수 강의 시간에 회의나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한경직 목사께 가지고 가서 질문을 하고 모종의 대답을 듣곤 했다는 것이다.
나는 평양신학교에서 본과 2학년을 시작하다가 교수진도  약하고 교통문제도 있어서 등교를 멈추고, 아버지가 목회하시는 황해도 장연(長淵)읍에 머물며 그 지방 단기 성경학교에서 가르치기도 하고, 몇몇 동지들과 함께 중학교를 세우고, 영어, 음악을 가르치는 교사 생활을 시작했었다. 1946년 늦가을 어느 날 아버지가 나에게 권하셨다. 
“서울에 좋은 신학교가 생겼다고 하고, 거기에는 박형용 박사등 훌륭한 교수들이 있다고 하니까, 너는 서울에 가는 것이 좋겠다.”(박형용 박사는 아직 만주에 계셨고 서울에 계시지 않았다.)
나는 즉각 행동으로 옮겼다. 아버지는 이미 불타산(佛陀山) 넘어 해안(海岸)에 있는 교회 집사, 배를 가지고 있는 집사와 연락하여, 남한으로 아들이 넘어갈 시간과 접촉 장소까지 마련해 놓으셨던 것이다. 나는 륙색에다 옷 몇 벌과 성경책과 영어 사전과 아버지 서재에서 얻은 헬라어 포켓 성경을 넣고, 아버지와 함께 약속된 승선(乘船)장에 이르러, 조그마한 배를 타고 야음을 이용하여, 아버지의 마지막 전송을 받으면서 남한으로 탈출하였다. 그것이 나의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보는 순간이 될 줄은 전혀 모르고, 공부를 마치면 돌아와서 내가 가장 존경하는 아버지 밑에서, 부목사가 되려는 꿈을 가지고 작별한 것이다. 나는 옹진에서 다시 다른 배를 타고 떠나, 한강을 거슬러 올라가 마포에서 배를 내렸다.
먼저 찾아간 곳은 물론 조선신학교였다. 장연 불타산 북쪽 기슭에 있는 조그마한 교회 전도사 이성권 형이 나를 맞아주었다. 그는 이미 가정을 가지고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분이었으며, 평양신학교에서는 나와 동급생이었다. 나는 우선 나의 아버지와 숭실대학에서 동급생이셨던 한경직 목사님을 찾아가서 추천서를 받아가지고, 조선신학교 본과 제2학년에 편입하였다. 
조선신학교의 내막을 전혀 모르는 나, 신학사상이나 노선에 대해서는 전혀 무감각한 철부지인 나는, 우선 신구약 성경 원어,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아는 목사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었기 때문에 수업 시간 외에는 전적으로 어학공부에 전념하였다. 평양신학교 시절에 헬라어 과목이 있었지만, 왜정 말기 어수선한 시기에다 가르치는 교수나 학생들이 열의가 없어서, 헬라어 공부가 초보 단계에서 후지부지하고 말았다. 그런데 나는 어찌된 셈인지 그 공부에 재미가 나서, 아버지 서가에서 발견한 그레샴 메이첸(Machen)의 The New Testament Greek for Beginners라는 책을 가지고, 독습을 하여 끝장을 보았기 때문에, 이제는 원전을 읽을 수 있는 단계에 있었다. 정대위 목사의 헬라어 시간에 들어갔더니 헬라어 알파벳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혼자서 헬라어 성경을 읽기로 결심하고, 하루에 적어도 원어 성경 한 장을 읽지 않고는 조반을 먹지 않기로 하였다. 헬라어 사전을 구할 수 없어서 Souter라는 사람의 간이(簡易) 사전을 가지고, 단어를 찾아가면서 읽어 나갔다. 조선신학교 기숙사는 물론 난방장치가 전혀 없는 일본식 다다미 방이었다. 그러나 나는 새벽 네 시경에 일어나, 남들은 아직 잠을 자고 있는 시간에, 담요를 뒤집어쓰고, 조반 식사 종이 울릴 때까지 사전을 뒤져가면서 성경을 읽었다. 약 8개월 만에 헬라어 성경을 독파할 수 있었다. 약간 자신이 생겼다. 헬라어 성경을 읽으면서, 구약성경 원어 히브리 공부도 하려는 마음을 먹고 본정(本町=지금의 충무로)의 책방들을 뒤져, 히브리어 교과서와 사전과 히브리어 성경을 샀다. 김재준 교수의 히브리어 강의 시간에 들어가 보니, 역시 알파벳에서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 느림보 수업을 받지 않기로 하고, 역시 혼자서 문법을 익혀나갔다. 미국 시카고 대학 신학부 교수 Harper의 귀납적 방법의 교과서와 연역적 방법의 교과서와 문장법 교과서를 겸하여 보면서 공부했다. 
겨울 방학이 되자 38 따라지인 나는 갈 곳이 없었다. 그런데 전남 구례읍 장로교회 장로인 동급생 정규오 장로가 나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내려갔다. 정규오의 장인이자 그 교회 당회장인 문재구 목사는 내가 평양신학교에 다닐 때 졸업반에 재학 중이어서 안면이 있는 터였다. 구례읍에서 약 2개월 여를 지내면서, 주일학교 학생들과 순서를 만들어 크리스마스 축하 공연도 하고, 정장로와 함께 벽촌 마을을 찾아가서 나는 나팔을 불어주고 정 장로는 노방 전도도 하고, 화엄사와 노고단 구경도 하는 등 뜻있는 방학을 지내고, 봄 학기를 맞았다. 그 교회에서 두둑이 준 돈으로 학비도 내고 용돈으로도 썼다. <계속>


박창환 목사
전 장신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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