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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세광침례교회 최기철 담임목사



사도 바울의 삶이 나의 삶이 되기를…

세광침례교회 부임 이전의 사역에 대해 알고 싶다.
한국에서 대전 침례신학대학을 다니던 중 군복무로 휴학을 하게 되었다. 복학을 앞두고 신학을 계속해야 할 것인지 고민하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어 복학을 하고, 목회를 시작했다. 첫 목회지는 대전 대흥침례교회였다. 이곳에서 주일학교 학생을 맡아 가르치며 목회훈련을 받았다. 그 후 신학대학 3년부터 담임목사로 오륙 통신부대에서 액팅 채플린으로 사역했다. 그 당시 성도는 150명 정도의 군인 가족이었다. 그 후 부산 영진침례교회에서 6개월 사역 후 사임하고 필리핀으로 선교사역을 위해 떠났다. 필리핀 5년, 도미니카 5년, 국내, 국외, 선교 20년을 합하여 약 30년 선교사역을 했다.

필리핀 선교 당시 사역이 궁금하다.
필리핀 마닐라 뱅게주 고산 지대에 있는 쌍칼로스 마을 ‘깐까나에 부족’ 원주민 사역을 했다. 이들은 바위투성이인 해발 2천미터의 산악지대에서 물도 없이 살고 있다. 그 지역에서 주일학교를 섬기며 물이 부족한 지역에 식수를 구해주며 복음을 전했다. 아내는 태어나 한번도 머리를 감지 못해 이가 뒤덮힌 아이의 머리를 감겨주고, 잘라주며 부모들에게 위생관념을 심어주었다. 나와 아내는 필리핀 현지 자매를 데리고 다니며 이 지역에 복음을 전했다. 이 지역은 도로시설이 되어 있지 않은 약 2백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원주인 마을이다. 필리핀은 1천개 이상의 잡신인 우상들을 섬기고 있어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에게 복음이 전해지고 삶이 변화되는 것을 체험하니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느껴졌다.
하나님은 나에게 교회 건축의 마음을 주셔서 1990년 쌍칼로스 마을에 교회를 세우게 되었다. 마을 입구에 땅을 구입하려 했으나 가격이 비싸 구입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기도하며 응답을 기다리는 중 바위 투성이인 땅을 구입했다. 바위를 평평하게 다듬고 그 위에 30평 규모의 교회를 지었다. 반석 위에 교회를 지은 것이다.(웃음) 그 교회 이름이 쌍칼로스 하이침례교회이다. 쌍칼로스 하이침례교회에서 5년 동안 사역하며 120명에게 침례를 주었다. 쌍칼로스 외에도 두 지역에 교회를 세우며 처치 플랜팅을 했다. 그외의 사역으로는 매주 두시간 산 밑에 있는 오르다네타 신학교 교수로 강의를 다녔고, 바기호 시내에 있는 신학교에서 교수 사역과 현지 목회자 훈련, 청소년 집회사역을 했다.

사역지가 산악지역이면 많이 힘드셨을텐데?
성경을 배낭에 가득메고 산악지역을 6시간씩 걷기는 쉽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일을 위해 하나님은 오래 전부터 나를 훈련 시키신 것 같다. 수색 특공대에서 군복무를 하며 산악지역을 주로 다니며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들보다 힘들지 않게 산악지역에 무거운 배낭을 메고 다니며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필리핀 선교 당시 기억에 남는 보람된 일은?
한 산간 마을에서 살인 청부업자를 만나 복음을 전했는데 하나님이 그를 사용하셔서 그리스도의 제자로 변화시켜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큰 감동을 받았다.

살인 청부업자가 그리스도의 제자로 변화된 간증이 궁금하다.
쌍칼로스 개척 후, 한 시골 마을에 전도하러 갔다. 그 지역은 살인 청부업자들이 살고 있는 위험한 지역이었다. 하지만 왠지 하나님은 그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마음을 주셨다. 위험한 지역이라 두려웠으나 순종하는 마음으로 갔다. 그곳에 도착하니 온 몸이 문신과 칼자국으로 뒤덮인 살인 청부업자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에게 다가가 우리는 한국 사람이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소개하자 마틴이란 친구 하나만 남고 모두 사라졌다. 마틴은 우리를 자기 집으로 인도했다. 방안에 들어가니 마틴 와이프가 죽은 송장처럼 누워 있었다. 우리는 그의 아내를 위해 마틴과 함께 간절히 기도했다. 그날 마틴은 예수님을 영접했다. 마틴과 오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그는 하나님이 오래 전에 예비해두신 사람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날 이후 마틴은 자주 교회로 찾아와 성경을 구해다가 게릴라 동료들에게 전해주며 복음을 전했다. 마틴은 이 지역 지리를 너무 잘 알고 있어서 고산지역 곳곳마다 찾아 다니며 성경을 전해주고, 복음을 전했다. 그 일은 게릴라로 훈련받은 마틴이 아니면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후 어느날 기독교 영화를 상영하는 곳에 들렸는데 한 여인이 인사를 했다. 알고보니 그는 마틴의 아내였다. 10년 동안 몸을 가누지도 못해 누워있던 마틴의 아내가 우리들의 간절한 기도를 받은 후 건강을 회복했다는 간증을 듣고 감사의 눈물이 흘렀다. 마틴 가정에 복음이 들어가자 회복이 일어난 것이다.

필리핀 지역에서 사역 당시 가장 힘들었던 기억은?
1990년 9월 강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강도 7.6의 지진을 만났다. 당시 공식적인 통계만 2만5천명이 죽었다고 한다. 그 날의 악몽은 평생 잊을 수가 없다. 산길을 운전해 집으로 가고 있는데 산이 흔들리며 길이 반으로 갈라졌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지구 종말의 광경이 눈 앞에서 일어난 것이었다. 1천7백 미터 산 꼭대기로 향하는 3개 도로중 75%가 무너지고 10만 명이 사는 도시는 75%가 파괴되었다. 산길을 올라가던 중에 산이 흔들리자 차가 급회전하며 갈라진 땅 사이로 차가 끼었다. 땅이 점점 벌어지며 눈 앞의 절벽에서 차는 떨어지고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점프하여 목숨을 건졌다. 물론 하나님이 하셨지만, 군복무 당시 수색 특공대에서 근무하며 받은 훈련이 나를 살린 것이다.

도미니카 사역을 시작한 계기는?
미국에서 12년간 낙스빌 제일침례교회를 섬기며 평안하고 안일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선교지에서 지낸 지난 날들을 생각하니 주님께 미안한 생각과 빚진 마음만 들었다. 그러던 차에 아이티에 대 지진이 일어났고 도미니카에 아이티 난민 250만이 어려운 삶을 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때 마음에 결심을 하고 도미나카로 선교를 떠났다. 도미니카 안에 있는 아이티 난민들을 위해 6년 동안 교회 2곳을 개척하고 15교회를 건축했다. 또한 하나님이 선교 센터를 세우게하여 주셨고 그 곳에서 목회신학원을 설립하여 현지인 사역자를 훈련시키며 양성하고 있다.

주님을 영접하게된 동기와 신앙의 여정이 궁금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교회 부흥회에서 예수님을 영접했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예수를 영접해서인지 주일날 교회도 참석하지 않고 초등학교 때부터 술 마시고 담배를 피며 하나님이 없는 삶을 살았다. 교회를 들락 거리는 날라리 신자였다. 그러던 중 대전의 명문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3수까지 했는데 합격이 되지 않았다. 그후 기독교 학교인 대성 고등학교에  들어가 여름 수양회 때 다시 주님를 만나고 신학교로 가게 되었다.

세광교회 부임 후 목회의 방향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선교 지향적인 교회가 되기 바란다. 말씀충만, 성령충만, 찬양충만한 교회가 되길 바라며 기도에 집중하려 한다. 영혼 구원에 힘쓰나 구원한 자를 내 제자 삼는 것이 아닌 예수님의 제자로서 사역을 감당하게 하며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가 되길 원한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영향력을 끼친 분은?
성경 속의 사도 바울이다. 온전히 주님만 전하는 사도 바울과 같은 제자가 되기 원했다. 선교지에서 사역할 때 나의 이름도 폴 최 였다. 그 후 성경 가르치는 일을 시작하며 에스라 최로 이름을 바꾸었다.


세광침례교회
4963 West Price Rd. Suwanee GA 30024
sekwangchurch.com / TEL: 470-589-1302

 대담 이윤태 발행인·정리 김태은 기자


2017-11-30 17:59 크리스찬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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