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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찬타임스 - Opinion 조인길 목사 - 주택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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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크리스찬타임스
작성일 2015-08-06 (목) 10:54
   
Opinion 조인길 목사 - 주택난
기사입력시간 : [2015-08-06 (목) 10:54]
하지만 믿는 사람으로써 어려운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도 분명히 부끄러운 일입니다.  한국의 한 지역에서 임대주택이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현수막을 내걸었다 


며칠 전, 잠깐 시원하길래 오랫만에 거실에 나가서 9시 뉴스를 보는데 심층뉴스라면서 전세대란에 대한 이야길 하더군요. 보도 내용은 간단했습니다. 서민들의 전세란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김영삼 정권 이래 모든 대통령이 임대 아파트를 몇십만 채 씩 짓겠다고 했지만 아무도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겁니다. 현 정권도 예외는 아니어서 선거 공약으로 저소득자를 위한 행복주택 수십만 채를 짓겠다고 약속했지만 아직 시작도 못했다고 하네요. 저는 그런 공약이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일을 왜 못하는지 아세요? 행복주택 건설 예정지 주민들이 반대를 하는 것이 제일 큰 이유랍니다. 그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인구과밀, 교통란, 물난리, 일조권, 조망권, 외국인이 대량 이주할 가능성등 여러가지가 있지만 제가 보기에 가장 큰 이유는 집값 하락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들어오면 동네의 브랜드 가치가 하락하고 결국에는 집 값이 떨어질거라는 얘기죠.
이런 비슷한 얘기는 미국에도 있습니다. 미국도 무주택자들에게 정부에서 집을 지어서 임대해 주는데 주민들의 반대가 심하죠. 하지만 미국에서는 집값의 하락도 하락이려니와 저소득자를 위한 주택 단지가 들어서면 마약과 범죄가 함께 따라 오기 때문에 반대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반대가 여기처럼 심하지는 않은데 거기는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집값이 그닥 비싸지 않을 뿐더러 땅도 넓어서 사람들이 반대를 하다가도 슬그머니 이사를 가버리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성토 대회를 한다면 이런 저런 이유로 정부 주택에 이사를 들어왔다가 거기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가난해서 작고 허름한 집에 사는 것까지는 참겠는데 아이들이 밖에서 노는 것도 위험하고,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는게 아니라 나쁜 것만 배워오고, 밤이면 밤마다 총소리와 경찰차의 싸이렌 소리가 울리고, 옆 집 남자는 하루 종일 웃통을 벗고 집 앞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고, 여기 저기서 헤로인을 판다는 소리가 들리는데서 살고 싶지는 않을테니까요. 
저는 행복 보금자리 주택 계획이 주민들의 반대로 시공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뉴스를 들으면서 “예수님이라면 과연 어떻게 하셨을까? 크리스챤으로써 어떻게 하는게 하나님 보시에게 아름다운 일일까?”를 생각해 봤는데 어렵더군요. 평생 어렵게 일해서 장만한 재산이라고는 집 한 채 뿐인데 누가 와서 그 가격을 떨어뜨리겠다고 한다면 기분이 좋을리 없죠. 하지만 믿는 사람으로써 어려운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도 분명히 부끄러운 일입니다. 
집에 대해 예수께서는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태복음 8:20)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게 된 동기는 예수를 따라 어디든지 가겠다는 사람들이 세상에도 한 발을 걸쳐 놓고 싶어했기 때문인데 이런 사람들에게 예수께서는 역정을 내시는 대신에 “나를 따라 오겠다는건 고마웁지만 그러려면 물질에 대해서도 초연해야 하는데...”라는 말씀을 해주신거죠.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총각이었고, 가정이 없었으니까 그게 가능했지만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기르는 집에서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냐? 가정을 가지고서도 돈에 초연한건 너무 무책임한게 아니냐?”라고. 그렇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만약 예수께서 오늘 우리 가운데 내려 오신다면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휘두르시면서 우리를 들었다 놓으실 가능성이 무지하게 높다는 사실입니다. 살만큼 살아보니까 물질이라는건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셔야만 그것을 소유한다는게 가능한데 우리는 마치 자기가 똑똑하고 잘나서 그렇된 것처럼 착각하며, 어려운 사람들에 대해서는 무관심을 넘어 적개심까지 품고 사니까요.
집 값이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행복 보금자리 주택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한국처럼 집값이 한두푼이 아닌 나라에서는 더더욱 이해가 가죠. 그렇지만 자기의 것만 지키기 위해 “여긴 안돼”라고 말하는건 좀 너무한 거 아닌가요? 미국처럼 땅이 넓은 것도 아니고 손바닥만한 땅덩어리에 수천만 명이 바글거리고 살고 있는데 그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하는거죠? 이럴 때 “그러지 말고 함께 사이좋게 삽시다. 우리 동네로 오세요.”라는 교회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예수께서는 오늘 우리의 기준으로 보면 스펙이 많이 딸렸습니다. 공부를 제대로 한 것도 아니고, 부모가 번듯한 직업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시골 출신에다, 이사야서에 보면 용모도 그렇게 출중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머리 둘 곳마저 없으셨으니…. 한마디로 루저였죠. 
그렇지만 그를 만난 사람들은 삶이 바뀌었습니다. 행복 보금자리 주택이 자기네 동네에 들어오는걸 반대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그런 집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루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랍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루저같이 보일지 모르나 우리보다 행복할지 모르고, 세상적으로는 가진 것이 없을지 모르나 영적으로는 우리보다 훨씬 더 풍요로운 삶을 영유하고 있을지 모르며, 그 사람들 중에는 우리에게 깊이있는 삶을 가르쳐 줄 인생의 선생들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조인길 목사
DeRoyal International
Executive Territory
Manager 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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