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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욱 교수의 조직신학 강좌 5

믿음이란 무엇인가?

오늘날 위기에 처한 한국교회를 새롭게 갱신하고 개혁하기 위하여 가장 시급하게 실천되어야 할 전략들 중 하나는 진정한 믿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이다. 
오늘날 믿음(헬라어로 pistis 피스티스)은 심각하게 오해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믿음을 지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성경에 대한 지식을 쌓고, 교회사와 신학에 대한 지식을 쌓으면 믿음이 좋아진다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 새로운 정보를 찾아 다닌다. 그러다가 정작 가져야할 바른 믿음을 가지지 못한 채 지식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리고, 끊임없이 영적으로 방황한다. 믿음이 지식을 기반으로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믿음과 지식을 동일시하는 것은 철저한 오류이다. 
어떤 사람들은 믿음을 신비한 경험이나 체험과 동일시 한다. 그래서 종교적인 체험이나 신비한 체험을 많이 할수록 믿음이 좋아진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은 방언이나 신유나 축사와 같은 신비한 체험을 극단적으로 추구한다. 물론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이 그 믿음에 기초한 어떤 체험과 경험을 할 수 있지만, 믿음 자체를 종교적이고 신비한 경험과 동일시하는 것은 철저한 오류이다.
어떤 사람들은 믿음이란 무조건 믿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런 질문이나 의문도 없이 그냥 있는 그대로 성경의 내용을 믿고, 지도자가 가르치는 대로 믿고, 맹목적으로 순종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은 이성적으로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머리와 이성으로 이해가 안되더라도 그냥 맹목적으로 믿고 따라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소위 따지지 않는 믿음이 큰 미덕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위에서 언급된 믿음에 대한 세 가지 태도는 현재 한국교회에 전반적으로 널리 퍼져있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바른 믿음의 본질은 위의 세 가지와 전혀 다르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그렇다면 성경은 믿음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가?
첫째,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은 지식이나 경험이 아니라 인격적인 신뢰(personal trust)이다. 다시 말하면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한 인격이 다른 인격을 신뢰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신뢰란 믿어 주는 것, 그 사람이 믿을만한 분임을 인정하고, 그 사람에게 의지하고, 의존하는 것을 뜻한다. 믿음의 대상에게 기대고 의탁하는 것을 의미한다. 믿음의 대상에게 자신을 완전히 맡기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은 우리가 예수님의 인격을 신뢰하는 것을 뜻한다. 예수님의 인격과 능력을 믿고 그 분에게 우리의 삶과 영원한 운명을 의탁하는 것이다. 예수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원하시며, 또한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이시고, 동시에 예수님만이 우리의 참된 주님이시요 임금이심을 인정하고, 그 분께 우리의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하고, 의존하는 것이다. 예수님 앞에 우리의 무릎을 꿇고, 우리의 주권을 양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이 말하는 바른 믿음이 인격적인 신뢰라는 말은 어떤 명제적인 진리나 교리가 우리 믿음의 직접적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우리는 바르게 설명되고 정리된 명제적인 진리나 교리가 바르다고 믿는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는 것은 참된 믿음이 아니다. 그 명제적 진리나 교리가 지시하는 살아있는 인격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그 분과 인격적인 관계를 믿는 것이 참된 믿음이다. 우리는 어떤 명제적 진리나 교리가 바르다고 믿기 때문에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 명제적 진리와 교리가 증거하는 인격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함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다.
둘째, 성경이 말하는 참된 믿음은 바른 지식과 함께 시작하고, 바른 지식에 기초한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때 그것은 반드시 예수님에 대한 바른 지식과 함께 시작한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자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아는 지식이 바른 믿음의 기초가 된다.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셨고, 그 죄인을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다시 살아나셨다는 복음에 대한 바른 지식과 함께 믿음은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는 참된 믿음이란 맹목적인 것이 아니다. 의심도 질문도 제기하지 못한 채 무조건 믿는 것이 아니다. 아무런 지성적 근거도 없이 막무가내로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이 말하는 바른 믿음은 그 믿음의 대상에 대한 바른 지식에 기초하며, 그 지식과 함께 시작된다. 그래서 때로는 의심이 일어날 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면서 믿음이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성경은 한 번도 우리에게 “말도 안되고, 이해도 안되는 것을 무조건 믿으라”고 명령한 적이 없다. 도리어 질문과 의심이 섞인 약한 믿음이 이해를 추구하는 과정을 통해서 더 강한 믿음이 되도록 도웅을 요청하라고 권면한다. 중세 신학자 안셈이 주장한 것처럼 참된 믿음은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Fides Quaerens Iintellectum)”일 수밖에 없다. 
셋째, 성경에서 말하는 참된 믿음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종교적 경험과 체험을 낳는다. 우리가 에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님으로 그리고 구원자로 믿고 의지할 때 그 믿음은 반드시 우리 삶에 구체적인 영향을 미친다. 우리 삶에 구체적인 변화를 가져다 준다. 믿음이 가진 그 영향력으로 인하여 우리는 우리 삶 속에서 다양한 체험을 하게 된다. 예수님과 인격적인 교제의 경험, 기도가 응답되는 체험, 범사에 감사함으로 기쁨이 우리 삶을 지배하는 체험, 용서가 되지 않던 다른 사람들을 긍휼한 마음으로 용서하게 되는 경험, 사랑과 무관했던 우리 마음이 사랑으로 가득차고, 그 사랑이 우리 삶을 변화시켜가는 경험, 때로는 신비한 은사에 대한 체험 등 다양한 경험과 체험들이 바로 참되고 바른 믿음의 산물이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성경이 말하는 참된 믿음은 반드시 그 믿음에 일치하는 행동을 낳는다. 다시 말하면 참된 믿음은 순종에 이르게 한다. 참된 믿음은 참된 실천을 낳는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입술로는 믿음이 있다고 고백하면서도, 그의 삶 속에서 순종과 선행과 실천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의 고백 여부와 상관없이 그의 믿음은 죽은 믿음, 가짜 믿음, 귀신의 믿음일 수밖에 없다(약 2:19). 믿음과 순종은 동전의 앞면과 뒷면과 같다. 믿음이 있으면, 반드시 순종이 따른다. 믿음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실천이 따른다. 예수님을 주님과 구주로 참되게 믿는 사람은 그 주님의 말씀에 더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그것은 논리적 필연이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안타깝게도 믿음에 대해서 여러 모로 오해해 왔다. 성경이 말하는 참되고 바른 믿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할 때, 한국교회의 갱신과 개혁은 앞당겨질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계속>


정성욱 목사
덴버신학교 조직신학 교수
큐리오스 인터내셔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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