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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환 목사 | 우리의 생각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닙니다

재미교포 작가 “김은국”저서 <순교자>(The Martyred)


이해하기가 정말 어려웠던 책이 한 권 있습니다. 재미교포 작가인 “김은국”씨가 쓴 <순교자>(The Martyred)입니다. 이 책은 김은국씨가 1964년에 발표한 데뷔작품입니다. 아쉽게도 지금은 타계하셔서 더 좋은 작품활동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이 책은 고인이 남긴 작품 중에서 가장 뛰어난 역작이 되고 말았습니다. “순교자”가 처음 출간될 때 많은 사람들은 이 책이 남녀 간의 로맨스나 자극적인 현장 묘사가 없이 이미 지나간 일들을 역추적해 나아가는 형식이라 세간의 큰 주목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모든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미국에서 20주 동안 연속으로 베스트 셀러가 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먼저 영문판이 나오고 나중에 한국어로 번역이 된 이 책은 한국 사람으로서는 최초로 노벨문학상 후보가 되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습니다. 

“순교자”는 6.25 한국 동란 중에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을 배경으로 해서 쓴 작품입니다. 유엔군의 개입으로 인해 북쪽으로 후퇴하게 된 인민군들이 개성 부근의 한 교회에 목사 14명을 붙잡아 놓고 배교를 강요합니다. 모진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신앙을 지킨 12명의 목사들을 총으로 처형해 버린 인민군들은 일말의 양심이 있었던지 믿음의 길을 포기한 신 목사와 겁에 질려 이미 정신줄을 놓아버린 한 목사를 살려주고 북으로 철수합니다. 더 이상의 살해는 자신들에게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인민군들이 물러가자 몰려든 마을 사람들 앞에서 신 목사는 처절한 양심고백을 하게 됩니다. 한치의 동요됨도 없이 마지막 순간까지 흔들리지 않고 자신들의 믿음을 지킨 12명의 목사님들 이야기를 전해주기도 하고, 온갖 고문 앞에서도 뜻을 굽히지 않고 저항하다가 미쳐버린 불쌍한 한 목사님의 이야기도 흐느끼며 증언했습니다. 

아울러 그는 비겁하게 살아남은 자신의 형편없는 모습도 가감없이 진술했습니다. “죽는 것이 너무도 무서워서 어쩔 수 없이 예수를 부인하고 목숨을 구걸했다”고 자신의 허물을 눈물로 사죄합니다. 폭포 눈물을 쏟으면서 자신의 배교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신 목사를 보면서 마을 주민들은 혼란에 빠집니다. 당시 상황이 너무도 공포스럽고, 살고 싶은 욕구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그의 변명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소위 목사라는 작자가 평소 자신의 목숨보다 더 귀하다고 말해왔던 예수를 너무도 쉽게 헌신짝 버리듯이 버렸다는 사실이 너무도 허망하고 충격적이었습니다. 절망스러웠습니다. 동료 목회자들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죽음으로 믿음을 사수할 때, 자기 혼자 살아보겠다고 믿음을 등진 나약한 신 목사를 마을 사람들은 역겨워하며 경멸의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쓰레기같은 신 목사에게는 용서도 아까웠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책의 주인공인 “이 대위”가 등장하면서 이 책은 대반전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 대위가 볼 때 신 목사라는 인물은 절대로 배교를 하거나 목숨 따위에 집착할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는 진실을 파헤치려고 노력합니다. 결국 이 대위는 신 목사의 증언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실제로는 정반대입니다. 12명의 목사들은 제발 살려 달라고 애걸복걸 했습니다. 목숨만 살려주면 예수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고 애원했습니다. 그들은 옆에 있던 동료 목사들을 서로 서로 욕하고 헐뜯으면서 정말 개같이 죽어갔습니다. 정신줄을 놓은 한 목사도 그들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는 바지에 대소변을 보며 너무도 무서워서 떨다가 실성해 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신 목사는 전혀 달랐습니다. 너무도 의연했습니다. 그는 끝까지 예수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기만 죽이고 다른 목사들은 살려 달라고 부탁을 하기까지 했습니다. 감동한 인민군 장교는 이 신 목사와 미쳐버린 한 목사를 살려주고 나머지 비겁하고 역겨운 목사들을 전부 총살시켜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혼란스러운 부분은 여기서부터 입니다. 정작 살아남은 신 목사는 사람들 앞에서 거꾸로 증언을 합니다. 12명의 목사는 거룩한 순교자들이라고 말하고 자신은 배교자라고 말해버린 것입니다. 그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모두가 절망하고 있던 현실 속에서 그 많은 목사들마저 그렇게 믿음을 버렸다고 한다면, 성도들은 어디에 소망을 두고 살아갈 것인가!” 
전쟁과 가난 그리고 배고픔 속에서 성도들이 꿈꿀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나라인데 목사들이 그것을 그렇게 쉽게 버렸다고 한다면 성도들은 너무도 불쌍하지 않겠느냐고 주장합니다. 신 목사의 논리는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실제로 그가 배교를 한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소설 중에서 신 목사는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아들이 죽는 모습을 보면서 믿음이 흔들리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신 목사는 살아남은 후에 오히려 배교를 하는 듯한 애매한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중공군들의 개입으로 다시 군인들이 38선 이남으로 후퇴하게 되었을 때 다시 한번 신 목사의 목사다움이 빛을 냅니다. 주인공인 이 대위가 신 목사에게 함께 남쪽으로 내려가자고 할 때, 신 목사는 끝까지 남아 주님의 양들을 돌보겠다고 말합니다. 

신목사는 이 대위에게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남깁니다. “인간을 사랑하시요, 대위. 그들을 사랑해 주시요. 용기를 가지고 끝까지 십자가를 지시요.” 물론, 작품 속에 등장하는 신목사의 신앙은 분명히 문제가 될 만한 요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소설이 처음에 한국에 들어갔을 때, 한국 교회들은 단체로 불매운동을 벌이기도 하고, 소설을 영화로 제작했을 때도 법적으로 상영을 하지 못하도록 데모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신목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성도들의 편에 서려고 노력했다는 사실입니다. 성도들의 소망과 기대를 지켜주기 위해서 그는 죽음의 공포도, 배교자가 되는 고통도, 그리고 거짓말장이가 되는 비겁함도 주저하지 않고 감내했습니다. 끝까지 홀로 십자가를 지는 신목사를 통해 작가 김은국은 독자들로 하여금 진정한 순교자가 누구인지를 묻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편에서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것도 순교이지만, 사람들의 편에 서서 끝까지 자기를 부정하는 것도 - 어쩌면 - 더 큰 의미의 순교일 수 있다는 것을 그는 보여주려고 한 것입니다. 언제나 지배 이데올로기 속에서 모든 것을 한쪽 면으로만 보려는 우리 현대인들에게 진리는 언제든지 다른 편에도 숨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은 보여줍니다. 우리가 한쪽에 치우친 시각으로 남을 함부로 평가하거나 폄훼해서는 안되는 이유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좋은 책입니다.    

 
김세환 목사
아틀란타 한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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